낭만으로 먹는 야식 파티
그래 내가 야식을 낭만으로 먹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니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말한 적이 있어야 말이지. "음식을 늦은 밤에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과 함께 먹는 "자극적인 고열량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물론 이 세 가지 조건에서 빠져도 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극적인 고열량 음식"을 저렴하게 먹고 싶으면 편의점 김밥과 햄버거, 컵라면을 사고, 돈 좀 써도 되는 상황이면 통에 담겨 오는 떡볶이나 치킨, 피자를 먹을 것이다. 유튜브는 내가 좋아하는 공포게임 플레이 영상이라거나 범죄사건 해결영상을 볼 것이다. 예전에 '청소녀 백과사전'에서 예린이가 리모컨을 들고 TV를 보면서 피자를 우물거리는 묘사가 재미있었는데, 마치 나도 예린이가 된 것 마냥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낯선 사람들과 같이 웃고 같이 무서워하고 같이 울고 싶다. TV가 없는 우리 집에서 유튜브는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친구이다. '야식 낭만 파티'란 사실 의미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몸이 당장 원하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나 혼자만의 시간과 감정을 즐기는 시간인 것이다. 사실 그냥 배달음식이라거나 포장이 아니라 매장에서 먹어도 괜찮다. 바깥 하늘은 어두운데 나는 환한 매장 조명 아래에 있는 것도 좋고 맛있는 걸 조용히 먹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분리수거도 하지 않고 나오는 것도 좋다. 그러나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 삑! 야식을 먹고 집에 갈 때는 빵이나 디저트를 조금 사 가서 외식의 여운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밥 먹을 기회가 순순히 오지 않는 사람들과 때늦은 저녁을 먹는 것도 좋다. 시간이 늦었지만 나 또는 타인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할 때라거나, 여행을 와서 늦은 시간에 교제를 한다거나. 그런 때에 음식과 함께하면 좋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식이나 라면, 과자 등이 있겠다. 방에서 혼자 야식 파티를 즐길 때에는 난 내 맘대로 '소풍'이라고 부르는, 평소에는 식탁에서 먹거나 내 방 책상에서 먹는 음식을 내 방 바닥에 앉아서 소풍 온 듯 먹는 것도 좋아한다. 여름에는 방 바닥에 앉는 것이 선풍기가 직방향으로 와서 좋고, 겨울에는 방 바닥이 뜨끈해서 좋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야식 낭만 파티'를 할 수가 없다. 당연하다. 지금 나는 체지방을 제거하는 프로젝트 - 즉 다이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의 골목을 지나면서 식당을 구경하는데 직장 동료 또는 가족들과 육전, 통닭, 막국수, 피자, 떡볶이 등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담한 베이커리에 진열되어 있는 파운드 케이크와 마들렌, 상투과자와 단팥빵도 탐이 났다. 고작 계란과 두유를 오후 6시에 먹은 것만으로는 '야식 낭만 파티'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 같아선 전부 포장을 해 집에 와서 밤 10시 내 방 바닥에서 소풍 아닌 잔치를 벌이고 싶은데 그건 "방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당한 이유와 절제 없이 야식과 폭식을 하는 것은 방탕함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내 목표 몸무게보다 덜 나가게 되면 한 번쯤은 '야식 낭만 파티'를 꼭 열 것이다. 떡볶이와 피자와 닭강정과 케이크를 꼭 먹을 것이다. 정말 초라한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