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코르셋을 동경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그 코르셋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상징 같았다. 이름도 왠지 예쁘고 고결해 보였다. 코르셋. 착용 즉시 몸매가 눈에 띄게 예뻐지며, 밖에서는 보이지 않아 비밀스럽고, 호흡곤란까지 일으켜 기절하게 만들고, 남이 뒤에서 꽉 당겨서 묶어버리는 일종의 폭력적인 문화, 자해와 같은 그것이 나에게는 왠지 낭만처럼 보였던 것 같다. 어떤 여자는 너무 꽉 묶어서 간이 위로 올라가 버려, 간에 갈비뼈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얼굴 생김새, 즉 이목구비에 대한 기준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스타일링, 몸매, 비율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엄격했다. 못생겨도(세상에 못생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날씬하고 비율 좋으면 모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논리적이고 공의롭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도 인물을 그릴 때 얼굴은 상관없으니 몸은 잘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은 어떻게 생기든 상관없이 각자 개성이 있지만 육체에 관하여는 과한 체지방 또는 관절까지 보이는 마른 체형은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특정 체형을 싫어할 수 있는 정당함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나는 뚱뚱한 사람들을 싫어해서 나조차도 싫어했다. 내 기준은 적당히 날씬하고 적당히 허리가 들어간 여자의 몸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적당히 날씬한 정도'가 아니라서 싫어했던 것이다. 또래에 비해 큰 가슴도 싫었다. 이마트나 웰리스 같은 곳에서도 내 사이즈는 보기 힘들었다. 속옷 전문점에나 가야 내 정확한 사이즈를 알 수 있었을 듯 싶은데 우리 집은 가난해서 속옷 전문점에서 고급 브래지어를 구매하는 큰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속옷에 만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는 것은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한국의 여학생 교복은 큰 가슴에 적합하지 않은 모양새였기 때문에 추하다고 생각해서 항상 어깨를 굽히고 다녔다. 큰 가슴을 가진 여자의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라서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난 덕분에 라운드숄더가 되어 필라테스로 고치고 있는 중이다. 허리 라인은 유전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작에 포기했다. 괜찮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예쁘게 봐주니까. 코르셋 하면 유럽의 귀족들이 생각날 뿐만 아니라 사실 1980년대 광주광역시를 배경으로 하는 '란제리 소녀시대'에 나오는 여고생 정희가 언니의 새하얀 코르셋을 차고 분식집 미팅에 나가 남고 아해들을 만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하! 그 시절에도 단단한 코르셋이 있었다니 신기했을 따름이다. 어쨌든 예쁜 몸매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뷰티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매일 바디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속눈썹 펌을 하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연지를 바르고 겨드랑이와 다리 제모를 하고 식단 조절을 한다. 내 간에 갈비뼈 자국이 남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