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한민국을 사는 서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병에 걸린다. 값싸고 유통기한이 오래 가는 공장제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군것질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장지방이 쌓여 있고 비만, 고혈압에 다다라 있다.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모르고, 안다 해도 전시, 문화, 공연을 즐길 시간과 돈이 없어 봉지에 담긴 과자, 빵, 당류 높고 저렴한 음료수 등으로 일시적인 쾌락을 일으켜 현실을 잠시 잊어본다. 신선한 제철과채, 글루텐프리 식빵과 무가당잼은 가격이 하늘에 있고 구매하고자 해도 이마트까지나 가야 한다. 잡곡밥은 식감도 맛도 지하를 뚫을 만하여 식욕이 오히려 쏙 없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새우깡과 칸쵸, CJ 볼로냐 스파게티, 삼립 양산빵, 아침에 오렌지 주스 등으로 입맛을 길들여 놓은 나는 이 식습관 바꾸기가 죽기보다 어려웠다. 주변에서 가공식품이 아예 안 들어오면 모르겠는데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라 서로를 위한 선물이 100%올리브유 따위가 아닌 스팸, 포도씨유, 카놀라유 같은 가공식품일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샐러드와 통밀빵과 78% 다크초콜릿으로 살고 싶었다. 블랙 커피와 비요뜨 초코링 따위로 점심식사로 때우는 세련된 여자가 되고 싶었다. 현실은 샤니 버터롤 클래식 한 봉지를 옆에 두고 만화책을 주구장창 읽는 나였지만. 몇 백원으로 극강의 쾌락을 맛볼 수 있는 초콜릿, 젤리, 사탕 등을 멀리해야 하는 건 학창시절의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운동을 했으면 되지 않았냐 하겠지만 난 운동의 필요성을 전혀 몰랐다. Why?만화책에서도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읽기보단 청결과 세균, 음식 알러지, 질병의 유전성, 편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고 나는 내가 위생적인 여자아이이며 건강하고 음식 알러지가 없으며 편식하지 않음을 감사하고 살았다. 식단을 통제하지 않으면 금세 주변에 있는 값싸고 달콤하고 자극적인 가공식품들을 먹게 되고 살이 찌고 만다. 그렇게 찐 살은 고강도 운동을 하루에 1시간 주 4회 이상으로 하지 않으면 절대 빠지지 않는다. 부자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운동과 식생활에 신경쓸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 집도 어렸을 때는 너무 가난해서 음식에 돈을 많이 쓸 수가 없었다. 헬스장도 사치였고 기껏해야 줄넘기를 뛰는 정도였다. 지금이야 1년에 100만원 이상 하는 필라테스를 일시불로 끊고 올리브유에 발사믹 식초를 넣어 새송이버섯과 양상추와 아보카도와 새우, 닭가슴살 등을 잔뜩 넣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지만, 가난했던 옛날에는 그렇게 풍성하게 만들어 먹을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고작 패밀리레스토랑 사이드 메뉴같은 샐러드 따위로 자라나는 십대 청소년들의 식욕을 누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현재는 우리 가족 모두가 돈을 벌고 있으므로 여유가 생겼다. 건강한 것으로 위를 채우는 것을 허락할 정도의 식욕과 입맛이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자극적인 야식과 간식으로 풀지도 않는다. 아니 이제 그렇게 못한다. 필라테스를 다니고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여유가 있다고 해서 병원비를 감당할 만치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고도비만인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생 이후로 항상 과체중이었다. 가장 최근에 쟀던 공복혈당도 정상 범위에서 아슬아슬할 정도였다. 복부둘레는 이미 표준 여성의 길이를 훌쩍 넘었었다. 비록 겨울 니트를 입고 재긴 했지만. 지금 나는 조금 더 체지방을 감량하고 싶다. 서민인 주제에 부자병 따위 걸리고 싶지 않다. 더이상 공산품과 가공식품을 달고 살고 싶지 않다. 내 몸, 내 식욕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