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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대한 단계적 성장

Amine 2024. 11. 4. 11:23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카페에 들어가면 커피 원두 냄새가 참 좋았다. 그러나 블랙 커피는 맛이 너무 없었다. 고작 어린애가 커피 맛을 뭘 알겠어. 다만 커피맛 아이스크림인 더위사냥은 가격도 비싸고 맛도 너무 고급스러워서 어렸을 때 가끔 먹을 기회가 있으면 꿈만 같이 행복하곤 했다. 그때부터 커피는 맛 없어도 커피 맛 가공식품은 달콤하고 맛있구나! 생각하여 특히 서울우유의 삼각커피우유를 동경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웹툰 같은 미디어에서 삼각커피우유가 편의점 삼각김밥과 더불어 고등학생들의 싸구려 카페인 보충제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에 돈도 없었고 그 커피우유 사먹을 돈으로 다른 마카롱이나 쵸컬릿 등을 사 먹었기 때문에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커피라는 개념에 대해 잊고 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카누 3봉지를 물병에 타는 식으로 블랙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건 사실 '커피를 맛있어서 즐긴다'는 개념이 절대 아니라 야자시간까지 졸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 쓴 것을 참고 틈틈이 마셔주는 양약이었다. 엄마가 아침마다 오늘은 커피 몇 봉지를 타주냐고 물어봐 주신 기억이 있다. 최소 3봉지 분량이었고 7교시, 8교시 때까지 커피를 반만 먹고 버티다가 나머지 반절 분량은 석식을 먹고 바로 입에 털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귀찮고 통제적인 고등학교 시절 나온 괴물 같은 가공우유가 있었는데 그건 스누피 커피우유였다. 스누피 커피우유는 GS25에서만 판매했고 용량도 500ml 밖에는 재고가 없었다. 한번 싹 털어 마시면 그날은 미친 듯이 불안했고 심장을 누가 잡고 흔드는 수준이었다. 맛있어서 가끔 야금야금 마시기는 했지만 한번 제대로 털린 이후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수험생 이후 마신 적이 없었다. 블랙커피도 수능 끝나고서는 당연히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용돈을 통장에 두둑히 받고 대학 근처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던 시절에 컴포즈 커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앉아있을 수 있는 매장은 아니었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이었는데, 거기서 '헤이즐넛 라떼'를 2700원의 가격에 한번 시켜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초 신세계를 맛 본 기분이었다. 너무 맛있었고 양도 많았고 향도 좋았다. 난 컴포즈에 반해버려서 바닐라 라떼와 헤이즐넛 라떼를 번갈아 시키며 주변 사람들에게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카페라떼가 참 맛있더라 하며 동네방네 전파를 했다. 그러고 나서 통장에 두둑히 있던 용돈이 똑 떨어진 시기가 있었다. 그 때부터 다달이 부모님께 20만원 30만원씩 용돈을 받고는 했는데 밥도 사먹고 컴포즈까지 갈 만한 여유까지는 없었다. 다만 그 때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스타벅스에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커피나 초콜릿 우유 한 잔 시켜 놓고 5-6시간을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을 가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혔다. 몇 개월을 그러고 살다가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이모와 커피토크를 하게 되었는데, 이모는 시럽 들어간 라떼보다 그냥 카페라떼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시럽은 몸에 좋지도 않고 카페라떼도 고소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 난 그때까지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랜덤이었고 카페라떼는 달지 않아서 무슨 맛으로 먹나 했다. 이모 말씀을 들으니 그런가? 싶고 왠지 시럽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질 것 같고 시럽 넣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린애 같고 해서 아이스 카페라떼부터 시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되게 고소하고 맛있더라. 코로나 시기를 지나 대학교 3학년 이후로 무조건 커피는 카페라떼를 마시게 되었다. 가끔 파우더를 넣은 바닐라 라떼 등 고급스런 단맛 나는 커피도 먹고 싶긴 했지만, 건강을 위해 카페라떼를 선택했다. 우습지만 그렇게 카페라떼에 열광할 때와 달리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도 카페라떼를 마시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카페라떼의 칼로리도 180칼로리라는 말에 식겁해서 정이 좀 떨어진 것도 있었고, 이제는 드디어 아메리카노가 맛있기 때문이다. 미니 카누를 연하게 타 먹어도 맛있고 산미 없는 고소한 아메리카노도 맛있다. 무엇보다 매일매일 카페라떼를 고집할 사치스런 이유가 나에게는 없다. 회사에서 주는 카누 한 봉지가 나에게 최선의 사치스러움이다. 아침마다 카누 한 봉지 차갑게 타서 빨대로 마신다. 그게 지금 정착한 직장인의 커피단계다. 아무래도 다음은 한여름에도 갓 내린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단계가 아닐까. 또 나의 커피 취향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