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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멋있고 세련된 여자

Amine 2024. 11. 1. 15:16

나는 어른이 되면 정말 멋있는 여자가 될 줄 알았다. 아니다, 난 사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현재의 고통만 참으면 어여쁜 미래가 오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지만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살았다' 이런 느낌은 없다. 그러나 내 또래 중에는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산' 사람들도 있겠지. 하여간 난 어렸을 때는 현실보다 상상에 집중했고 그마저도 현실적인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판타지스럽고 유치한 상상이었다. 어쨌든 20대 여자가 된 나의 모습을 막연하게 아름다울 것이라고 원하기는 했나 보다. 현실이 이렇게 실망스러운 것을 보면. 싸이월드 일러스트나 머그컵 디자인 혹은 다이어리 표지 삽화로 그려지는 아름답고 프렌치 스타일의 코디를 한 날씬한 언니들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그 언니들이 항상 들고 있던 명품백은 자동으로 가지게 되는 건 줄 알았다. 손에 하나씩 들고 댕기는 스타벅스 커피도 카라멜 마끼야또가 아니라 그저 맛 없는 블랙커피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머리 둘레보다 짧은 허리 둘레와 세련된 화장은 저절로 얻어질 줄 알았고 멋있는 패션 센스도, 귀여운 방 인테리어도, 옆에 끼고 다니는 다정한 남자친구도 다 자동으로 생기는 건 줄 알았다. 대학생 때는 어찌저찌 그런 "aesthetic"을 따라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지만 살집이 있고 키도 크지 않은 나는 애초에 그런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달성한 추구미는 그냥 손에 든 커피 한잔 정도였다. 그것도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헤이즐넛 라떼 아니면 연유라떼. 살이 무지막지하게 찔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체중 관리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또 나는 세상살이에 순응하는 스타일도 딱히 아니었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있어서 외모로 인정받으려고 하지도 않았거니와 오직 내면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이란 참으로 얄팍한 것이라서 어른들은 외모가 깔끔하고 멋있으면 내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더라 이 말입니다. 지금은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나도 '속물'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린시절 로망을 이루고 싶은 걸까. 아직도 큰 귀고리에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미니스커트, 검은색 스타킹에 가죽부츠를 신고 멋있는 블라우스를 툭 걸친 호리호리한 여자들을 보면 설렌다. 선글라스 또는 두건 같은 악세사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 시절 내가 되고 싶었던 여자는 그런 옷차림을 한 사람이었나 보다. 세월은 지나가는데 취향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촌스러운 여자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