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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티타임의 로망스

Amine 2024. 11. 14. 13:20

참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살이 찌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 글 중에서도 쿠키로 시작하는 글이 있듯이, 나는 단 것, 디저트를 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서양 전래동화들을 보고자람에 있다. 특히 나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친 책은 '소공녀'로 알려진 '세라 이야기', '빨간머리 앤', '비밀의 화원' 등이 있다. 세라와 앤과 메리가 영국의 티타임 문화를 나에게 처음 알려준 것이다. 동화책 삽화에서야, 아이들이 보는 거니 당연히 고증과 묘사가 어찌 되든 상관 없었을 것이고 온갖 달콤해보이는 케이크와 과자들을 그려 놓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건대 그녀들이 먹었던 빵과 쿠키와 케이크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하얀 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빵과 설탕 듬뿍 들어간 잼이 아니라 딱딱하기 그지없을 비스킷과 통밀빵이었을 것이다. 난 바보같이 그런 일러스트로 그린 디저트 더미에 속아서 낭만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특히 티타임이라고 할 때 그 '티'는 설탕과 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홍차와 녹차, 당류 0g 허브차 종류였을 것을 예상한다. 어쨌든 어렸을 적 나는 그런 문화를 너무나 동경해서 어린이용 도자기 미니어처 티 세트가 생겼을 때 날뛰며 기뻐했다. 동생과 나는 그것을 나무식탁 위에 펼쳐 놓고, 테이블보를 깔고, 미니 주전자에 보리차 또는 우유를 채워 넣어서 가짜 티타임을 가지곤 했다. 접시에는 해태 에이스 과자를 뭉탱이로 놓고 비스킷인 양 굴었다. 그리고 케이크라도 생일에 먹게 되면, 홀케이크에서 한 조각을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게 잘라서 예쁘게 놓고 유리잔의 적당히 따른 우유와 함께 놓고 꼭 포크로 먹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예시간에 초콜릿 쿠키 여러 조각과 그릇을 지점토로 구현하거나 쿠키를 입에 갖다대며 먹는 척 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아래 사진에 나오는 미니어처 티타임 세트를 학교에 들고 가서 커피를 따라 마시곤 했다. 싫어하시는 선생님들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시며 웃으시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물론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미니어처 도자기 티 세트는 아마 교회 동생들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나의 '티 타임'에 대한 동경은 그 정석적 티 타임에 대한 어떠한 문화적 이해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 무작위스럽긴 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능까지 나는 노리F2 폴더폰을 썼는데, 거기에는 영한사전 기능이 있어서 단어마다 내가 나름대로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었다. '디저트'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놓고, 티타임이나 간식, 케이크 종류의 영단어들을 새롭게 찾아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나의 소소한 취미였다. 허영심이 많아서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 종류들이 나의 악세사리이자 정체성이었던 것 같다. 예쁜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나 잡지, 화보에는 꼭 예쁜 디저트들이 나오는데, 그 언니들이 그런 것을 먹지 않았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처럼 판초콜릿을 하나 다 먹거나, 롤케이크 반 상자를 다 먹거나 그러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도 티 타임은 동경하지만, 오후 4시의 한국 직장인은 그 당류 가득한 초콜릿 가공품들과 밀가루 제품들, 그리고 설탕 또는 시럽을 넣은 커피, 에이드를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그냥 그건 실체 없는 로망스이자 동경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단 것은 아주 좋아한다. 오히려 현재로선 단 것을 아주 제한해야 하는 슬픔이 있어서, 더 티타임의 기회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Butterfly miniature tea set